용환천

우연의 계측-The long road 

2020. 12. 22(TUE) - 12.30(WED)

 

아주 얇은 선이라 하여도 하나의 선을 긋는 다는 것은 무한한 빈 공간에 경계를 나누는 일이며 경계로 나누어진 공간은 이곳과 저곳, 혹은 있음과 없음을 구분하게 해준다.

선을 하나 더 그으면 면이 되고 선은 또 하나의 공간이 된다. 나는 반복과 우연이라는 개념을 무수한 선과 색을 이용해 겹치고 맞닿게 함으로써 공간을 만들어 내고 직선의 교차 지점에 우연히 드러나는 새로운 공간의 상상력을 표현한다.

계측된 선들이 만나는 지점에 도시의 기호적인 사물(파이프,창문,굴뚝 등)을 그려 넣음으로써 하나의 건축적인 공간의 형태를 만들어 내고 선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공간의 확장을 작품으로 그려내고 있다.

우연의 계측 ;

이른 저녁의 기억

용환천의 선은 공간을 만들기도 하지만, 오히려 공간 자체의 의미를 해체해 버린다. 그리고 그 선들이 만들어 놓거나 혹은, 해체해 버린 공간들 속에는 작가가 연출한 찰나의 순간이 있다. 물론, 다음 장면으로 바로 이어질 것 같은 시간적 기대감을 간직한 채. 그의 화면에 드리워지는 시간은 현실적인 시간보다는 감각적인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듯 하다. 길게 늘어진 사물의 그림자를 보자면, 태양이 수평선에 걸리기 직전, 이른 저녁 시간에 볼 수 있을법한 그림자들이다. 물론, 그의 하늘도 마찬가지의 시간대인 듯 하고. 그러나 사물은 시간에 간섭을 받고 있지만, 공간을 구성하는 선들은 그렇지 않다. 전혀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따라서 선은 현실적인 공간을 만들기도 하지만, 해체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의 선들은 그 자체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지, 이야기가 새로 만들어지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선들에는 이미 많은 기억들이 담겨 있음으로, 시. 공간과는 이미 그 어떤 연관이 없을 것 같다. 단지, 작가의 감각적 조형언어로 치환되었을 뿐이다. (글. 임대식)

윤종구

숲을 넘어 그림이 되다 

2020. 12. 16(WED) - 12.2(TUE)

 

숲을 넘어 그림이 되다

 

올해는 삶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고 끙끙 앓았다. 코로나 펜데믹의 영향이 크다. 하루에 수천명의 인명이 희생되고 심지어는 시신이 거리에 나뒹굴고 방치되는 뉴스를 접할 때 나는 참담함에 전율했고 한동안 큰 충격에 휩싸였다. 코로나 시대 이전에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던 삶을 검약하게 줄이지 않으면 도저히 이 비극적 상황을 고개를 들고 바라보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삶의 안락함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번민했다. 내가 이 시대에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삶을 엄밀하게 다듬고 낭비를 줄이며 세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산 옆으로 이사를 한 뒤 6년째 늘 아침산책을 해왔다. 봉우리에 오르는 아침산책은 매일매일 해와 공기와 바람과 풀과 나무들... 숲에 사는 모든 생명들과 인사를 나누는 의식이었다. 아침산책에서 종종 나는 관찰자로서의 나 자신을 망각하게 된다. 따뜻한 아침햇살이 얼굴에 내려와 앉을 때 그렇고 아침공기가 무한히 달다고 느껴질 때, 허공을 무심한 듯 날고 있는 새의 비행을 넋을 잃고 따라갈 때, 숲의 세계에서 빚어지는 여러 자연현상들의 비의를 엿보게 될 때 그러했다. 나는 이럴 때 숲이 주는 모티프로서의 무한 가능성을 깨닫게 된다.

 

그동안 나는 현대미술이라는 허상 속에서 갈팡질팡 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약 30년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붓질 하나도 제대로 모르고 그려왔다는 사실이었다. 붓질이 가는 것을 느끼며 캔버스에 다가서니 그림의 말이 달라졌다. 색은 또 어떠한가, 회화에서 색은 주변에 어떤 색이 놓이느냐에 따라 무한히 변주되고 색의 음은 정밀해진다. 붓질과 색, 화면구성, 회화의 아주 기본적인 요소만으로도 작가에게는 평생의 과업이 될 수 있음을 50 중반이 되어서야 겨우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코로나 펜데믹이 아니었다면 아마 몇 년 뒤에나 깨닫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윤 종 구

이문주​

Dance 

2020. 12. 02(WED) - 12.12(SAT)

 

이문주_젊은 커플_acrylic on canvas_130.3 x 97cm_2019
​이번 전시에서는 도심의 한 공원을 지나가다가 본 야외에서의 댄스 수업 장면을 소재로 한 연작의 중간과정을 소개한다. 개발지역의 도시풍경을 주로 다루던 기존작업에서 잠시 눈을 돌려 이번 새로운 연작에서는 공간이 아닌 사람에 초점을 맞춘다.
(중략)
  우리 시대의 노인은 급변한 세상의 세련된 매너와 새로운 개념을 다시 배우지 못한 부적응자로 치부될 때가 많다. 사고방식이 과거에 멈춰 고집불통에 말이 안 통하며 생산능력을 잃어 돌봄이 필요한 대상 정도로 간주되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뉴스 사회면은 앞으로 청년 한명이 부양해야 할 노인 인구수에 대해, 그리고 노령인구 증가로 인한 사회적 비용에 대해 통계를 내며 고령화 시대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이야기한다. 그러한 기사의 댓글에는 노인 폄하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내용이 어김없이 올라오곤 한다. 우리는 누가나가 곧 될 모습인 노인을 지나간 시대와 동일시하는 시각, 또는 능력의 관점, 생산성의 과넘이나 통계의 관점에서도 아닌 또 다른 눈으로 좀 더 응시해야 하지 않을까?
  작업의 출발점이 어떠하였든 나는 이 인물화를 통해 사회적 이슈를 이야기해보겠다는 생각보다는 이미지의 사실성을 어디까지 유지하고 어느 정도의 모호함을 남길 것인지, 인물에 적합한 배경이 구체적인 공간일지 평면적인 것일지, 색채와 명암은 어떻게 단순화할 것인지 등, 그리기 과정에서 마주치는 이런저런 시각적 표현의 문제들에 집중하고자 했다. 그 때 보았던 댄스 수업의 주인공들이 매우 단순한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던 것처럼.
  100세 시대를 이야기하면서도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언제나 젊음의 이미지를 전면에 내새우며 나이 듦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댄스> 연작은 누구나의 미래인 노인의 모습을 '조형적'으로 시각화하면서 스스로가 가진 의식적, 무의식적 편견을 자각하고 인간 존재의 모습을 유심히 다시 관찰해보는 작업의 과정이 될 것이다.( 작가노트)

​윤예진

밤을 훔치자. 달아나자 

2020. 11. 18(WED) - 12.1(TUE)

 

자아의 상실로 인한 무의식 속

죽음의 욕망에 대하여

 

-이방인들-

 

수많은 사람들과 어울러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하나의 바람직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 자신의 욕구와 충동을 억압하며 타인의 말과 행동에 순응하는 삶은 동시에 이 규율에서 어긋한 행동을 할 경우 언젠가 도태되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 강박감으로 내면에 자리 잡게 된다.

이로 인한 정신적 동요 속에서 쫒기 듯 만들어진 허구의 모습은 본래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하여, 결국 본인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언인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 지 길을 잃은 채 욕구와 절제 사이의 혼란을 빚어낸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자신이 속한 집단의 규율을 따르는 것은 암묵적인 동의 아래 이루어지는 이치이나, 규정된 삶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피어나는 자유로운 표현의 욕구와 충동 따위가 본능적인 것 임에도 불구하고 무척 낯설게 느껴지게 되는 현상은 자신의 주체성과 자아의 확립에 있어 혼란을 빚어낸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내면에 묻혀버린 채 표출되지 못한 감정들은 이내 자신을 병들게 만들고, 이는 지속적인 우울감. 즉 멜랑콜리아의 탄생을 의미한다. 본인은 개인적인 과거 트라우마의 각성과 더불어 우울한 시대 속 표류하는 하나의 멜랑콜리아로서 이러한 현상에 의해 자아를 상실하고 무의식 세계로 빠져든 사람들을 평온한 죽음의 안식을 찾아 부유하는 이방인이자 몽상가라 표현하였다.

 

작품 속 이방인들은 부당한 사회 현상에 좌절하고 절망하지만 직접적으로 맞서 싸우지 않는다. 철저히 현실을 외면하고 부정하며 사회가 요구하는 온순하고 유약해 보이는 모습을 지닌 사슴의 탈을 뒤집어씀으로서 스스로를 감추고 동일시 한 모습으로 드러내고 있다. 때문에 작품은 잿빛 색채를 머금은 투명하고 맑은 수채화와 같은 기법을 이용하여 진실을 감추고 더욱 동화적이고 아름다운 느낌을 극대화하여 이질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캔버스 너머 무언가를 또렷이 응시하고 있는 사슴의 눈동자에는 조용히 들끓는 분노와, 환희에 가까운 모호한 감정이 잠재되어있으며 이는 진취적으로 모든 생명의 끝에 주어진 죽음을 쟁취하겠다는 강렬한 소망과 의지, 그리고 그 유한한 삶에 존재하는 의미를 찾는 신호가 된다.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깊은 불안과 무기력함, 우울한 감정들을 정적인 모습으로서 구성하고, 동시에 본래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기록의 과정이자, 혼란한 사회 속 누군가의 외로움에 공감할 수 있는 치유의 기능을 담아내고자 한다.

전용환

Transforming Cycles

2020. 10. 28(WED) - 11.17(TUE)

 

알루미늄의 특성을 이용하여 선재작업과 화려한 컬러를 쓰는 회화적인 조각가 전용환

‘Transforming cycles(순환-변형)’ 복잡한 단백질구조를 이미지화하여 조형화

다양하고 복잡한 구조를 지닌 단백질은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서 원시적인 생명체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 존재하며 필수요소로써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생명의 근본을 이해하고 형상화하여 그 아름다움을 조형화함으로써 생명이 존재함에 있어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이 내포되어 있는지를 말해주고자 한다.

작품은 알루미늄 재료의 가볍고 부드러운 특성을 이용하는 선재작업에 화려한 컬러를 쓰는 회화적인 조각으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선의 리듬과 좋은 에너지의 발산과 화려한 색상으로 리드미컬한 운율을 느끼게 해준다.

작품에서 쓰이는 화살표는 시작과 끝이 계속 연결되어 끝이 없이 하나의 고리로 순환되어 이어지고 있으며 외형적으로는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는 순환-변형의 개념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순환의 의미를 색채로 나타내주고자 공기의 순환, 계절의 순환 등을 색이 가지는 이미지로 표현해주고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선의 리듬과 좋은 에너지의 발산과 화려한 색상에 매료되기도 하고 관람자 각자가 의미를 부여하기를 기대해본다.

최 인 환

S  U  R  F  A  C  E  S

2020. 10. 19(MON) - 10.26(MON)

 


Choi In Hwan.  Professor, 
The department of Industrial Design, 
Sungshin Women's University

바람, 조각

김민구

2020. 10. 7(WED) - 10.16(FRI)

 

보이는 것, 보여지는 것

​안광선 이정미 경수

2020. 9. 16(WED) - 9. 22(TUE)

 

​안광선

 

이정미 

 

경수

 

DOOR

임은정

 

2020. 9. 02(WED) - 9. 15(TUE)

 

문과 벽에 그림자의 형상들은 본래 모습의 색채와 내용이 모두 제거된 또 다른 형상(그림자)을 만들어 내고, 그 형상들은 또 다른 형상 위에 드리워져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며, 일상적이고 익숙한 공간은 특별한 공간으로 변화한다.

작품에는 벽과 문, 의자, 넝쿨, 꽃, 창문 등 일상적인 요소가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소재의 선택적인 배치와 그림자의 연출에 의해 감정과 온도와 시간의 흐름을 담았다. 대상을 작품 안에 도입하여 작가의 상상이 더하게 되면 우리와 사물과의 관계는 객관적인 의미에서 주관적인 의미로 변환된다.

작품의 그림자와 빛은 긍정적인 의미로서 따스함과 에너지를 보여주며, 시간과 상황을 암시하고 느낌이나 감정을 증대시킨다.

인물이 부재한 공간은 타자의 공간이 아니라,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이 공간은 적막함과 고요함을 느끼게 하며, 작품과 관람자가 둘만의 깊은 소통이 가능케 하는 것이다. 작품 속 풍경은 정신적인 위로와 충전의 기회가 되어준다.

 

Blessing 2020

김경아

 

2020. 08. 26(WED) - 09. 1(TUE)

 

2020 함께한 아픔과 두려움의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다.

우리는 내일의 회복을 기다리고  있다.

"Blessing2020" 섬유디자인 전시를 준비하며 우리 모두에게

평안과 축복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작품 속의 꽃들이 우리들의 모습이 되는 그날을 기대한다.

The Origins

Rosona

 

2020. 06. 24(WED) - 06. 30(TUE)

 

These are the origins of all creations,

the balances and the core energys.

It represents an existence like a nucleus

that holds the best energy status

before the flowers are in full bloom.

From the sprouts to the blooming period,

The branches try to show the power attempt to spread out.

From these vitality of energys,

every creations have been prepared, and experienced and challenged.

And these have shown small movements started beginning of tremendous energys.

These are the represents an yin and yang's power of oriental philosophy, balance and cooperations of all of creations around us.

HALF BORED HALF FASCINATED

 

2020 PROJECT_2

김준수 X LOVOT LAB

 

2020. 01. 29(WED) - 02. 07(FRI)

 

어떤 미술은 진부하고 구태에 머무르며 과거를 무책임하게 답습하기도 한다.

또한 폐쇄적인 망상에 사로잡힌 작가들의 드라마 안에서 허우적대기도 하며, 난독증을 일으키는 유해한 문장으로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기도 한다. 동시대 미술의 가치는 유연하고 날렵하다.
솔직하고 직관적이기까지 하다. 단언할 수 없지만 미술은 그랬을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작업이 동시대성을 가지게끔 하고 싶다. 나의 관심은 구체적인 해법을 말하는 일이나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건을 접하는 순간의 감정을 관찰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추상주의 작가들의 초기 작업들. 예를 들어 Rothko 나 Pollock 의 초현실주의 작업이 가진 이미지의 모호성은 습작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생동감을 준다. 사이키델릭이나 80년대 재패니즈 사이버펑크의 이미지가 나의 작업에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Aeon Flux 같은 MTV 애니메이션에서 받는 영감을 클래식이나 모던아트로 거슬러 올라가며 추적해보곤 한다.
레퍼런스의 원류로 최대한 근접하려는 노력이 있어야만 작가의 작업이 고유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김준수

LOVOT LAB

러봇랩은 전자 및 컴퓨터공학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다양한 형식의 예술 활동을 하는 세 명의 미디어 아티스트로 이루어진 그룹이다. 
홍현수는 전자회로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활용한 예술적 탐구를 중심으로, 신원백은 모든 미디어의 기반이 되는 전기 에너지를 인문학적 관점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통해, 이설은 감각과 자의식에 대해 각각 연구하며 아티스트 그룹으로서의 방향성을 정립하고 있다.

COEXISTENCE

 

1月 PROJECT_1

우정화 이진희 이은섭

 

2020. 01. 14(TUE) - 01. 22(WED)

 

2020 Project_1 기획전시인 <Coexistence 공존> 전시를 통해 우정화, 이은섭, 이진희 세 명의 작가가 기록한 일상에 담긴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기억은 시선과 맞물려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보통의 사물은 사유의 형태로 재탄생된다. 작가의 경험 속에 자리 잡은 무수히 많은 기억에 대해, 개인적인 삶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어떠한 시선으로 일상을 기억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